2024년 3월 고1 국어 모의고사를 통해 알아보는 희곡 공부법
어제 3월 모의고사가 전국에서 치러졌습니다. 고1 학생들에게는 처음 응시하는 모의고사이다 보니 상당수 학생들로서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으리라고 예상합니다. 특히 마지막 44번과 45번 문제는 희곡 지문을 읽고 푸는 문제였는데, 시험지의 끄트머리에 다다를 때쯤 안 그래도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갓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충분히 접해본 적 없는 희곡 지문이 나타났으니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롭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44번 문제와 45번 문제의 난이도는 썩 높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균에 비해 쉬운 문제였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어렵게 느껴졌다면 시간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던 이상 희곡을 독해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곡은 어떻게 독해할 수 있을까요? 혹은 희곡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요? 희곡에 접근하는 방식을 논하기 위해서는 희곡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희곡은 대사와 지문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국어 교습 환경, 혹은 문학 비평에서 쓰는 표현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희곡 지문을 읽으며 해야 하는 일은 인물의 언행을 파악하는 것이라고요.
언행, 말 그대로 말과 행동입니다. 말은 대사를 통해, 말이 아닌 나머지 행동은 지문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 모의고사에서 나온 『그게 아닌데』의 인물들이 중략 이전의 대목까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파악해볼까요?
조련사는 말합니다. “나도 코끼리랑 눈이 마주쳤지만 휘파람을 불었는데. 못 본 척 휘파람만 불었는데. 도망가라고.” 이를 보자면 조련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겠군요. 자신은 코끼리들이 도망치도록 방관했다는 것입니다.
이어 의사의 차례입니다. “도망치지 마세요. 선생님은 지금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그리로 도망가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조련사의 주장은 회피를 위한 거짓말이라는군요.
형사는 어떨까요? “시켜서 했다고. 그들이 널 1년 전부터 코끼리 조련에 투입했잖아.” 형사의 말에 따르면, 조련사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습니다.
자, 모두 조련사에 관하여 정작 조련사의 말과 반대되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 조련사는 답답할 수밖에 없겠죠? “그는 발을 구르고 팔을 휘두르고 고개를 흔”든다고 지문에 나와 있네요. 사실 희곡 지문에서는 이 정도만 써줘도 충분합니다만, 『그게 아닌데』에서는 굳이 “조련사는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너무 답답하다”라는 부연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독해를 쉽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제는 중략 이후의 대목을 봅시다. 조련사의 대사에 주목하세요. “내가 했는데. 다 내가 했는데.” 이에 대한 형사의 대답은 “거기까지. 잘했어.”입니다. 원래 주장이 상충되었던 두 사람인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형사의 대사 “다른 얘긴 집어치우고 유세장 얘기만 해. 어떻게 유세장으로 코끼리를 유인했는지. 고생했다.”를 보면 형사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조련사에게 관철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요.
중략 이전의 대목에서 비교적 불분명했던 다른 인물들의 주장도 뒤따르는 대사들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의사는 말합니다. “코끼리를 사랑할 순 있지만 그건 병이에요.” 즉, 조련사에게 병적인 상태가 있다는 판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쩌겠니. 순진하기만 한 걸. 그렇게 생겨 먹은 걸. […] 그래도 넌 여전히 착하고 멋지다. […] 누가 너처럼 용감할 수 있니? 그래, 다 풀어 줘.” 어머니에 따르면, 조련사는 그 착한 성품 때문에 코끼리를 의도적으로 풀어준 것입니다.
한편, 지문을 통해 나타나는 조련사의 행동을 중략 전후로 대조해볼 수도 있습니다. 조련사는 원래 어머니를 “피한” 것 외에도 의사와 형사를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대사뿐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도 그들의 말을 시인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그는 형사에게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올려 이마에 경례를 붙”이고, 의사에게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정중하게” 하며, 어머니는 “살짝 포옹했다” 풉니다. 이는 그의 외적인 수긍을 보여주는 지문들입니다.
이 글에서는 조련사와 다른 인물들의 언행이 드러내는 상징적, 사회적인 의미는 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각 인물의 언행, 즉 말과 행동을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희곡 독해가 상당히 쉬워진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앞으로 고1 학생들이 희곡 공부를 할 때 우선 인물들의 언행을 살펴보신다면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예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