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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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의 경쟁을 위한 공부는 재미없다.
보통 부모님들의 걱정은, 아이가 도통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로, 소위 '국영수'의 입시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입시 공부는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99점을 받아도 100점을 받은 학생들이 전체의 4%를 넘으면 2등급을 받게 되는 구조. 이는 특히 모집단이 겨우 200명 남짓인 학교 내신 시험에서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며, 그러한 까닭에 내신 시험 문제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롭고 지엽적으로 출제됩니다. '변별력 확보'라는 분명한 목적 하나로.
어쨌든 입시 공부는 남과의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 경쟁 자체에서 재미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일만큼 재미없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의 골만 깊어질 뿐이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과 비교하면 공히 자기위안을 얻게 될 뿐입니다. 남과 비교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무익하고 무용하게 끝이 나고, 그렇기에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입시 공부는 '단지' 재미없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중고등학생들 대부분이 해야만 하는 입시 공부의 재미없음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정녕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는 없는 것일까요?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라고 말하는 '범생이'들이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짓말이 아니라면, '범생이'들이란 속된 말로 '맛이 간' 별종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기 보상에 의한 공부의 재미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말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성적이 쭉쭉 오르는 경험을 하면서 공부의 재미를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로, 사람들이 공부보다는 게임이나 유튜브 같은 것이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단기적인 보상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통해 성적을 올리는 경험은 단기간의 시간 투자로는 어려운데 반해, 게임에서의 레벨업이나 유튜브의 떠먹여주는 지식, 유희거리는 아주 쉽고 빠르게 보상을 안겨줍니다. 현 입시 체제 하에서 공부의 재미를 느꼈다면, 이처럼 공부를 마치 게임처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공부를 하면 바로바로 눈에 띌 만큼 오르니, 재미가 없을 리 만무합니다. 중간에 크고 작은 굴곡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단기 보상의 체험 없이는 일반적으로 공부의 재미를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기 보상에 의한 공부의 재미는,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허여되는 것입니다. 타고난 두뇌를 가졌거나, 아니면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몇 시간이고 집중할 수 있다거나, 타고난 의지력을 가졌거나 하는 등, 노력과는 별개로 이른바 재능이 있어야, 단기 보상의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에 재능 없는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영영 공부는 재미 없는 것이라 여겨야만 하는 걸까요? 그래서 영영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요? 공부의 재미는 소수의 재능 있는 아이들의 전유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런 보상 없이도 꾸준히 공부의 재미를 느끼려면
단기 보상에 의해 공부의 재미를 느끼는 것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보상이 끊기는 순간 공부의 재미가 급격하게 반감된다는 것입니다.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초반에 레벨이 쭉쭉 오르다가 어느 순간 정체기가 찾아왔을 때, 재미는 한 풀 꺾입니다. 그렇지만 게임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는데, 레벨업의 속도는 느리지만 다음 레벨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다음 레벨에 도달하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로,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 성적이 쭉쭉 오르므로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기에 도달하고 더이상 공부가 곧바로 성적 상승의 출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이른바 '슬럼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재미있었다고 주장하는 소위 SKY생들 조차 이 슬럼프의 존재를 무시하지 못하고, 슬럼프를 극복했을 때 비로소 공부의 재미를 다시금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은 슬럼프 극복에 실패하고, 이로 인해 대학 입시 이후 공부에 아예 학을 떼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집니다.
단기 보상 없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공부의 목적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여 높은 성적을 받아내야만 성공적인 공부라고 생각하기에, 공부는 재미없어집니다. 공부만 했다 하면 성적이 쭉쭉 오르는 체험을 하다가도 정체기가 오면, 이를 극복하기까지 필요한 시간, 노력, 방법을 알 길이 없기에 공부는 재미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타인과 비교하는 대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는 것을 공부의 목적으로 삼는 것을 권장합니다. 남과의 비교의 지표로 활용되는 성적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엄정한 잣대에 의해 자기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나 더 자기 삶을 돌보았는지를 스스로 평가해 보기를 권합니다.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만, 저희가 항상 강조하는 철저한 관리와는 별개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에 뜻도 의지도 흥미도 없는 아이를 불러다놓고 '지금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고...'하는 식의 설득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하도 많이 들은 말이기에, 잔소리로 여기고 아예 귀를 닫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더 수학적 사고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지, 국어 텍스트를 읽고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지, 영어 문장을 구사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파악할 줄 알게 되었는지, 한국의 역사를 더 잘 알게 되었는지 등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끼는 일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거듭함으로써,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 없어서.(...)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의 기대효과' 중.
위 언명은 입시 공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지만, 입시 공부라고 해서 자기 갱신의 체험이 원천적으로 불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통해 어제보다 나아진 자기를 발견하는 체험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으로써 學生을 완연히 전유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