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과목] 뉴로모픽 반도체와 공부법
암기 : 정말 이해와 별개의 것일까?
최근 삼성전자에서 RAM 반도체와 CPU를 통합한 반도체인 M램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본래 메모리 반도체인 DRAM에서는 정보의 단기 저장을 담당하고, CPU에서는 정보의 처리를 담당한다. 메모리와 CPU의 통합이 시사하는 바는, 단일한 부품에서 처리와 저장이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효율적으로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의 뇌와도 유사한데, 인간의 뇌도 이와 마찬가지로 처리와 저장을 뇌라는 하나의 기관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도체에서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것을 뉴로모픽(Neuromorphic)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인간의 뇌를 모방한 기술이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요구되는 방대한 양의 정보 처리에 있어 한계에 부딪힌 현재의 컴퓨팅 기술을 극복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간을 모방하는 기술은 비단 반도체에서만 있었던 시도는 아니다. 사람들은 꾸준히 인간의 능력을 모방하고자 해왔다. 가령 두 발로 걷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 중 하나이다. 실제로 로봇 공학에서도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발로 안정적으로 걷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써왔다. 이 중에서도, 인간이 가진 ‘생각하는 힘’은 그 무엇보다도 인간이 모방하고자 하는 힘일 것이다.
처리와 저장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늘 예, 복습을 철저히 하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으라고 말한다. 처리와 저장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이른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 내용을 깊게 생각하고, 앞으로 나올 내용에 대해 기존의 지식으로 미루어 생각하며,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간단히 ‘이해’라는 두 글자로 부른다. 이것이 바로 뉴로모픽 반도체-M램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라고 부르는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로모픽이 말 그대로 사람의 뇌를 모방하여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학생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를 하지 않는다. 수업 진도, 예습, 복습, 시험 기간 대비가 각각 다 다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평소 수업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고, 학교 마치고는 학원에 가서 다시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기만 하고서는, 시험이 닥쳐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공부를 한다. 우리 학생들은 소위 말해 ‘벼락치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인간의 생각하는 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또한 공부란 생각하는 법을 기르는 것임에도, 학생들은 이 각각의 프로세스를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여긴다.
암기라면 학을 떼는 한 학생이 있다. 수학, 과학처럼 생각해서 문제를 푸는 과목들은 좋아하지만, 국사, 사회처럼 암기가 주를 이루는 과목은 싫어한다. 싫어하니까 안 하게 되고, 안 하니까 못 하게 된다. 못하니까 자신감도 떨어지고, 더더욱 싫어하게 된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학생에게 무작정 암기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암기는 이해와 별개의 영역일까? 소위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암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상의 영역인 것인가?
정답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아니다’이다. 학생이 암기를 싫어하고,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지를 모를 뿐이다. 다시, 뉴로모픽 반도체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왜 정보의 처리와 저장을 동시에 하는가? 정보량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학생이 암기를 어려워하는 것도, 정보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가고, 자습을 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과정에서 공부하는 내용이 제각각 따로라는 것이다. 학교 수업에서는 영어를 배우고, 학원에서는 수학을 배우고, 자습을 할 때는 과학을 공부한다. 이래서는 뇌가 해당 과목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막상 시험 기간이 닥쳐서 암기과목을 공부하려고 하면, 기존에 저장해둔 정보가 없으니 사실상 처음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암기가 막막하게만 느껴지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이제 해결책은 명료해졌다. 핵심은 정보의 수용과 처리, 저장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즉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이해와 암기를 해보자. 아무리 암기과목이라고 할지라도 무작정 처음부터 외우라고 강요하는 수업은 없다. 하물며 역사에서도,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은 설명하기 마련이다. 수업에서 주목해서 들어야 하는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이른바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소위 암기과목 시험에서 당락을 가른다고 생각되는, 자세하고 세밀한 부분은 이 과정에서는 과감히 생략한다. 이는 CPU가 정보를 처리할 때 최대한 단순한 형태로 압축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큰 흐름이다. 가령, 전쟁사를 공부한다고 한다면, 특정한 전투 이름과 그 전투에서 있었던 장수의 활약은 수업을 들을 때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고려해야 하는 점은, 왜 전쟁이 발발했는지, 누가 우위를 점했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판세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이었는지, 전쟁은 어떻게 마무리되었고 두 진영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등의 중심 흐름이다. 이 중심 흐름을 이해했으면, 우리의 뇌는 자연스럽게 이 큰 흐름을 저장한다. 이는 마치,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를 우리가 의식해서 외우지 않아도 줄줄 읊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렇게 큰 흐름을 이해했으면, 다음은 이 흐름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다. 이제 자습의 과정에서 이 큰 흐름에 살을 덧붙인다. 암기과목에서 디테일한 부분의 암기는 이때 해야 한다. 정보의 처리와 저장이 이루어졌으니, 이것에 구체적인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것이다. 암기과목을 공부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시험 기간에 상당한 기간을 할애했음에도 성적이 미진한 학생과, 시험 기간에 교과서를 몇 번 훑었을 뿐인데 암기과목이라면 귀신같이 고득점을 받는 학생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후자의 학생은 사실상 시험 기간에 공부할 분량이 많지 않다. 큰 줄기를 외웠으니, 그 줄기의 끝자락에 매달린 열매만 파악하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아마도 많이들 이에 해당하는, 학생은 큰 흐름의 뿌리부터 열매까지의 정보를 산발적으로 받아들이므로, 공부의 효율이 나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의 뇌는 위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전 세계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고자 연구를 거듭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우리의 뇌를 잘 쓸 줄 모른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우리 뇌의 사용법을 잘 알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정보의 처리와 저장의 일원화, 이것은 아마도 우리 뇌 사용 설명서의 첫 장을 장식할 것이다.
참고 기사: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89%B4%EB%A1%9C%EB%AA%A8%ED%94%BD-%EC%9D%B8%EA%B0%84-%EB%87%8C-%EB%AA%A8%EC%82%AC%ED%95%9C-ai-%ED%83%84%EC%83%9D-%EC%95%9E%EB%8B%B9%EA%B8%B4%EB%8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