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지 멘토 /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 001.jpg [File Size:227.4KB]
- 002.jpg [File Size:186.3KB]
- 003.jpg [File Size:185.1KB]
- 004.jpg [File Size:190.7KB]
- 005.jpg [File Size:181.6KB]
안녕하세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담임 멘토로 활동하는 조성지입니다. 사범대에 있으면서 교육을 전공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가 적잖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생활, 대학생활을 거치며 또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을 만나왔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장기적으로 학생의 성장을 지켜봅니다.
사범대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교생 실습 등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은 보통 짧은 기간동안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더 선호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주기적으로 학생과 만나서 교류하는 것입니다. 몇 달, 몇 년에 걸쳐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게 있어서도 매우 뿌듯한 일입니다.
과외, 교육 봉사 등을 비롯한 교육 행위를 통해 느낀 것은, ‘교육’을 협소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육 정책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학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많이 공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용자의 입장에서 교육 정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흔히들 ‘교육’이라고 하면 교수자의 역량과 집중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나치게 교수자 위주의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궁극적으로 수용자, 즉 학생을 어떻게 성장시킬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고민 하에서,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지를 스스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검증의 과정이 중장기적으로 누적됨에 따라, 학생이 전보다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교육을 전공한 입장에서 더할나위 없이 기쁜 일입니다.
공부는 삶 전체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사람마다 그 답은 다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자체로 즐길만한 것이기에 해야 한다고 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질문 이전에, 근본적으로 ‘공부’라는 게 당최 무엇인지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심지어 교사와 학부모들 마저도 ‘공부’를 매우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줄세우기식 경쟁구도가 된 대한민국의 입시전쟁의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학교에서 배우는 국영수만이 공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에 공부가 수반됩니다. 가령 안전 교육이라든지, 성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동시에 공부입니다. 이런 점에서, 공부는 삶 전체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협소한 의미에서의 중고등학교 공부만 놓고 본다면, 공부가 삶에 대해 갖는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결과물은 성적표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 그리고 심지어는 학부모님들까지도, “실생활에 별 소용 없는 것을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줄세우기”를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 공부를 할 동기는 저하되고 맙니다.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흔히들 여기는 것처럼, 수험 공부의 내용, 가령 미적분이나 고전시가 같은 것은 실생활과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습 경험은, 수험 과정이라는 큰 프로젝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넓은 의미에서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일입니다. 대학에 가든 직장을 갖게 되든, 삶과 공부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므로 중등교육에 놓여있는 학생들은, 단지 미적분을 잘 하고 고전시가를 잘 외우는 것 이상의 테스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주어진 ‘공부’에 충실할 수 있는지, 인생 전체에 걸친 더 큰 공부를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멘토로서, 나아가 교육자로서 할 일은 단지 아이의 성적을 올려놓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일 그 이상의 가치를 갖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게끔 해야 할 사명과 책무 아래에 교육자로서의 제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성장을 경험해본 입장에서, 성장을 가능케 합니다.
흔히들 ‘서울대’하면 전교 1등만 진학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농담삼아 ‘서울대 3대 바보’의 하나에 ‘전교 1등 자랑하는 사람’ 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전교 1등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상위권으로 졸업하긴 했지만, 전교 1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그렇다고 이른바 명문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모여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닙니다. 중학교 때는 수학 60점도 받아봤고, 고등학교 때는 국어 3등급도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전체 내신 성적 1.1을 달성하여, 말 그대로 성적을 ‘갈아 엎어서’ 최상위권으로 서울대에 진학하게 됩니다.
몇 년 사이에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공부법은 추후 칼럼을 통해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저의 공부는 복습을 통한 성장 과정이었습니다. 예습은 전혀 하지 않고, 복습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성적은 착실하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성적을 올리는 경험은 그 자체로는 ‘성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대학 수험생활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공부와 삶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온 점에서 ‘성장’을 경험했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 대학에 와서 어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느낍니다. 이런 입장에 서서 보면, 중고등학교때 참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그 미숙함을 만끽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학생일 때만 용인되는 실수나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실수와 잘못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 그 때는 수치스럽고 괴로운 경험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그 때 겪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야 겪게 되고, 그땐 자기 손으로 직접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수험생활 도중 괴로운 일이나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지금 겪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신경 쓰는 부분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 그리고 때로는 선생님들은 자기 기준에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어쨌든 수험생활에서 제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더군다 선생님의 입장이다 보니, 종종 학생의 입장을 간과하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어른의 시선에서는 별 일 아닌 일일지라도, 학생의 입장에서는 여러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폭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를 고려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부족한 부분들과 단점들만 눈에 띄게 됩니다. 그 결과, 어른들은 아이에게 칭찬이 인색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의식적으로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칭찬하려 합니다.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은 실수하는 게 당연합니다. 학생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그 과정의 실수마저도 칭찬해야 하는 것이 멘토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적극적인 칭찬을 통해 학생을 성장으로 이끌어내는 멘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