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진리 멘토입니다. 2011년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뒤, 현재는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입니다. 추후 통번역 분야에서 더 공부할 계획이 있기도 합니다.

 

 멘토는 학생의 삶을 바꿉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연령대와 무관히 좋아해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도 오래 했습니다. 한편 고등학생은 어느 정도 각별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성인기에 접근하는 시기는 특별한 까닭입니다. 고등학생들은 각각의 생각과 자율성을 존중하되, 아직 그들의 가치판단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하며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먼저 가본 사람으로서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며 생각을 트이게 해주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멘토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멘토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전 잠시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오랜 시간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수준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했는데, 현재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멘토가 되기로 다짐했던 것은 언젠가 꼭 멘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온 까닭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좋은 멘토들을 여럿 만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1 때 처음 친 3월 모의고사에서 저는 영어 성적이 40점 정도였는데, 저를 정말 아들처럼 아껴주신 학원 선생님 덕에 3개월 만에 90점 이상의 점수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또 고2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학을 어려워하던 제게 카이스트 교수셨던 남편분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대를 다니고 있던 따님까지 소개해주시며 계속해서 저로 하여금 더 큰 가능성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사람은 전교 1등을 하던 제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게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었는데, 저는 이 사람들 모두가 제 인생의 크나큰 멘토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제 인생의 멘토라고 부르는 까닭은 단순히 공부를 잘하게 되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멘토들 덕분에 삶의 가치관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고, 과외를 하며 학생들을 대할 때도 제가 그들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던지 항상 되새겼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게는 신념이 있습니다. 멘토가 된 이상 저는 학생의 실력 향상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짧은 기간일지언정 인생의 동반자로서 학생이 지닌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열어젖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학생들과 만나며 이 신념을 실현해 왔기에 저는, 제가 멘토라고 말합니다.

 

 엑스레이 사진 한 장에 오랜 꿈이 허물어졌습니다

 

연세대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밟았다고 하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원래부터 공부는 못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잘했습니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축구를 전업으로 하는 이른바 엘리트 팀에서 계속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잘했습니다. 이미 10대 때 저는 대전시 풋살 대표선수로 전국 8강까지 올라가봤고 같은 시기 축구를 하며 설기현 선수와 이영표 선수를 만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안 환경이 조금만 더 유복했더라면 가장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를 쉽고 빠르게 승낙했을 텐데, 거절하는 제 마음도 안타까웠고 제 거절을 거듭 받아야만 했던 축구팀들로서도 안타까운 노릇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2002년 월드컵이 있었으니 한국 축구의 저변이 엘리트 축구를 넘어 한창 커지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한 가지 이상한 특성이 있었습니다. 축구 대회에서 득점왕도 숱하게 차지할 정도로 기술이나 슈팅력은 좋았으나 항상 체력과 관련된 지적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뛰는 것을 어려워 했는데, 초반에는 잘하다가 후반에는 기술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술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체력을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릴 수가 없어, 참다 못해 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듣던 날은 지금도 먹먹한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엑스레이로 촬영된 제 허파에는 흉터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어릴 적 제가 앓은 줄도 모르고 지나갔던 결핵의 흔적이었습니다. 과거 어머니께서 결핵에 걸린 적이 있으셨다는 것은 나중에 들었습니다.

 

오랜 꿈이 허물어진 자리에, 새 꿈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제 체력 문제는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풀타임을 뛰지 못하는 축구 선수는 별 소용이 없으니 말입니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에 감금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힐 때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리는데, 자주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나 오래 보고 있는 까닭에 우리에게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고요. 여전히 깜깜한 방이었지만, 두 줄기의 빛이 새어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빛줄기는 앞서 말한 멘토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빛줄기는 서형욱 축구 해설로부터 말미암은 제 내부의 동기였습니다.

서형욱 해설자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리버풀대에서 축구사업으로 석사를 한 분입니다. 선수로 뛰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축구 관련 사업을 하고 싶은 것이 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축구 미디어 아카데미나 프로 스포츠 에이전트 아카데미 등이 생겼지만 제 10대 시절에는 그런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 국내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해외로 유학까지 떠나며 서형욱이 일군 성과를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이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좋은 대학에 가서, 유학을 떠나고, 축구 공부를 하겠다. 축구 해설위원이 되고, 피파에서도 일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이것이 제 막연하지만 굳건했던 결심이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로 인정을 받았던 저는 어느새 인정받을 수단을 상실한 채였습니다. 불안감은 컸고, 이제부터 공부를 하겠다는 제 말에 주변 친구들은 그래봤자 되겠냐는 소리를 했습니다. 상관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악바리 근성으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붙들었던 과목이 영어였던 까닭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하게 될 줄은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좌충우돌하되,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고등학교 입학 후 제 내신 성적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하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곧장 눈에 띄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 성적은 다만 꾸준히 계속 올랐습니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첫 모의고사 성적이 40점대였던 영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학원 선생님께 ‘빠따'로 맞으며 독하게 배웠습니다(아시다시피,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영어 성적이 올라 자신감이 붙었고, 이후 순서대로 국어, 사탐,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처지였을뿐더러 저는 고등학생 치고도 공부 경험이 없는 편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거시적인 학습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좌충우돌은 하되, 좌고우면은 하지 않으며 묵묵히 갈 길을 갔습니다.

영어는 학원에서 배운 뒤로는 별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독하게 공부했는데, 강성태 선생님의 이야기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국어는 이해황 저 『언어의 기술』을 보되 특히 고전문학 영역에서 EBS와 『자이스토리』로 보강했습니다. 인강의 도움을 주로 받은 영역은 수리로, 신승범 선생님과 삽자루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법을 조금씩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를 원어민보다 더 잘하는 비법 - 기초에 충실하라

 

여러 과목 중 현재 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지도하고, 또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영어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저는 원어민에 준하는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학술 영역에서는 보통의 원어민보다 더 잘 쓰고 말하는 측면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렇게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문법의 기본틀이었습니다. 제 영어 수업은 무조건 영어 문장의 5형식부터 시작합니다. 기초가 잡히지 않으면 이후의 영어 공부는 하등 소용이 없는 까닭입니다.

문법 기초가 튼튼할 때 영어 공부가 얼마나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한때 제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니 영어 성적을 만들어달라고 찾아온 분이 계셨습니다. 공시는 7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는데 사실상 영어 공부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수준부터 시작해, 3개월 내내 문법과 독해만 반복했습니다. 결국 그분은 7개월 만에 합격에 필요한 영어 성적을 거뒀는데, 결코 특이한 경우라고 보지 않습니다. 문법의 기본틀이 잡혔다면 그다음부터는 반복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반복 중 오류가 발생할 시 수정해주는 것은 선생의 역할이고, 그 과정 속에서 논리력 등 독해에 필요한 역량이 자연스레 향상됩니다. 즉, 문장의 논리가 보이면 이내 문단의 논리가 보이고, 연후 문단과 문단 사이의 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눈에 들어오며 독해 실력의 순차적 확장이 일어납니다.

또 한 가지 문법 외에 중요한 기초는 단어입니다. 저는 학생에게 영영사전을 적극 권유하며, 단어의 뜻을 절대 하나만 외우지 않고 최소 서너 개까지는 기억하도록 지도합니다. 고백하건대, 고등학교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어 학원 선생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영한사전에 기초한 수업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수능 영어 독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정한 영어 1등급, 혹은 안정적인 영어 2등급까지는 영한사전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1등급, 나아가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아웃풋을 낼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영사전을 활용하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합니다

 

고교 시절 아쉬운 점을 하나 이야기하고 보니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잠을 충분히 자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수능을 치르는 데 절대적인 공부의 양이 필요한 것은 옳으나, 수능은 또한 사고력을 요구하는 시험입니다. 달리 말해 논리력과 빠른 판단력이 중요하고 이는 맑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 때만 하더라도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아마 저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께서 잠을 줄여가며 성적을 향상시킨 세대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반복되었던 듯합니다. 저는 잠을 줄이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여과 없이 흡수하여 수능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따랐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 공부를 하고 또 뇌과학 도서를 읽으며 절감한 점은, 잠을 충분히 자야 짧은 시간이더라도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맑은 정신으로 공부를 하면 좋은 판단력과 논리력이 발달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기존에 공부했던 양이 정 부족하다면 사당오락 같은 자세가 얼마간은 성적 향상에 쓸모있을지도 모르겠지만, 2등급 정도까지에 국한될 따름입니다.

만약  어느 정도 학습의 기초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점에서 성적이 오르기를 멈췄다면,  생활 습관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잠은 충분히 자고 있나요? 미디어에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는 아닌가요? 성적의 향상은 생활 습관의 개선을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태도가 바를 때, 학업 성취도가 오릅니다

 

남들과 거의 비슷하게, 똑같이 애쓰고 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국에 학업 성취도의 결정적 차이는 공부에 임하는 태도로부터 말미암는다고요.

진부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말이니, 마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습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배우려는 열망이 강한 학생들은 빠르게 성장합니다. 수업 중 흡수도 빠르고, 다음 수업 시간이 되기 전까지 이미 배운 것은 모두 소화해서 옵니다. 게다가 선생이 하는 말 한마디조차 흘려듣지 않고, 이러저러한 공부방법을 알려줬을 때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반대로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학습에 임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학습 태도가 좋은 학생에 비해 성적 향상이 턱없이 느립니다. 당연합니다. 그들은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그들이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태도는 마음이 열릴 때 변합니다

 

고로 저는 교과 내용 자체보다는 학생들의 태도에 우선 집중하는 멘토입니다. 저는 학부모분들께도, 학생에게 공부부터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성적이라는 결과를 생각하더라도 태도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태도를 바꾸려면 멘토는 많이 들어야 합니다. 그 학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그런 태도를 지니게 되었는지,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물으며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강제로 변하지 않고, 변화는 외적 동기가 아니라 내적 동기에서 일어날 때 더욱 큽니다. 이때, 내적 동기는 두 인생, 멘토의 인생과 학생의 인생이 만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과거 제대 후 대전에서 과외를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자제를 가르쳤는데, 과하게 응석받이로 자라난 학생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것은 5월이었고 당시 그 학생의 영어 성적은 30점이었습니다. 그뒤로 30점이었던 점수는 11월 수능 때 80점까지 올랐습니다.

제가 아주 특별한 영어 교습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생의 태도를 바꿔주었습니다. 다소 표현이 상스럽지만 소위 ‘싸가지’가 없는 학생이었는데,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도 영 불손하고 교우 관계에서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꼬인 게 많은 학생은 공부도 어렵기 마련입니다. 세상이 다 나빠 보이고 인간 관계에서는 스트레스만 받는데 공부가 될 리 없습니다(요즘 학생들 중 다수가 미디어로 도피하는 것도 사실 내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위 학생과는 첫 한 달 동안 계속 싸웠습니다. 학생은 분해서 우는데 저는 달래느라 수업 시간을 다 쓴 적도 있었고, 때로는 엄하게 혼냈고, 때로는 안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열린 뒤에야 학생은 저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과외 경험이 굉장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전히 뜻깊게 남아 있는 추억입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학생을 돕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학생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대단한 비결은 없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사람은 대개 각자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저는 그 영역에서 매우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 하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성경에 있는 삶을 제 인생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학생들을 대하며 이런 태도가 겉으로 드러날 때는 그 양상이 따뜻할 수도 있고 냉철할 수도 있으나, 비록 언제나 온전하진 못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부모님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저는 성적상으로는 상위권보다 중하위권 학생, 모든 곳이 번듯하기보다는 어딘가 힘든 지점이 있는 학생을 더 좋아합니다. 공부는 잘하지 못하고 모범생도 아니었던 과거가 제게 있었으니 더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습니다. 제가 도움을 더 많이 줄 수 있는 학생에게, 도움을 더 많이 주고 싶습니다.

 

공부는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자주 맞닥뜨리는 질문이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 공부에 열성을 다하지 않는 학생일수록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저는 답합니다. 우리는 결국 잘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요.

잘 산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견지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것이 잘 사는 일에 포함될 수 있기는 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일수록 무엇이든 잘 할 가능성이 큽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좋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며 많은 판단을 통해 선택을 내려야만 합니다. 이것으로부터 많은 결과가 따라옵니다. 따라서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다면 반드시 공부와 연관된 진로를 택하지 않더라도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견지에서 교육은 초중고생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모두 필요한 것인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제도의 틀 안에서 일방향적인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홀로 자립하지 못하고, 혼자서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한계에서 놀라운 가능성이 펼쳐집니다. 결국 교육이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지식의 총량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 만남을 통해 모두가 발전합니다. 멘토도 학생도 발전하는, 그런 만남을 저는 바랍니다.

 

함께 걷는 멘토이고 싶습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멘토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앞서는 선생이 아니라 같이 걷는 형이 되고 싶습니다. 성경을 보며 제가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항상 제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밥도 먹이고, 같이 걸으며 공생활 3년을 보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장합니다.

저도 그렇게 함께 걷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고, 공감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생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데,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멘토이고 싶다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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